보관함/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고래, 최세라

fromk 2015. 9. 25. 01:14

607호에 고래가 산다

 

욕조에서 철썩이던 천둥벌거숭이 뛰어나와

엄마, 날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날수 있어요?

손에 손에 휴지를 팔랑이며 뛰어 다닌다

 

날기 위해서는 먼저

숨을 참아야 한단다 중생대의 이크티오사우루스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짜디짠 바닷물이 심장에 가득 찰때

두손이 지느러미로 바뀌는 거란다

어떻게 숨을 참을 수 있어요?

 

그리움이 흘러나와 척추를 타고 발바닥에 고이면

우리가 사는 집 가득 바닷물이 들이차고

심해의 고래가 기억의 배가 되어 먼 바다로 데려간단다

여기 해안선을 달음박치는 너와 나,

우리가 추억하는 모든 사람을 향해

파도는 고래의 마리오네뜨가 되어 어깨를 들썩이고

가슴에 묻은 죽은 사람들의 넋이 백색왜성으로 떠오르면

드디어 고래를 쫓아 심해를 날아다닐 수 있게 된단다

추억이 뭐예요?

 

추억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힘이란다

성묘 가지 않아도 맑은 술 한 잔 봉분에 뿌릴 수 있고

조그만 물살에도 힘없이 떠내려갈때

와락 잡을 수 있는 억센 수초란다

 

이것 보세요, 엄마

고래가 비행기같이 바다를 날아요

추억을 모르는 아이가 활개치며 팔딱팔딱 뛰다가

욕조로 돌아가 파도를 일으킨다

문득 고래의 휘파람소리 내 집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