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시

당신 눈동자 속의 물, 김혜순

fromk 2015. 9. 30. 01:14

내가 아침에 일어나 슬픈 노래를 부르면

컵의 물도 슬퍼지고 변기의 물도 슬퍼지고

꽃대궁 속으로 쿨럭거리며 올라가던 꽃병의 물도 슬퍼지고

입속에 물을 가득 품은 채 참고 있는

수도꼭지 속의 물도 슬퍼지고


창밖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고 날아오른다고

하지 마라 그건 내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한없이 떨어지고만 있는 것이니

天空 滿空에 떨어질 줄밖에 모르는 대지를 타고 가는 것이니


흐르는 물은 흐르면서 몸을 씻지만

이렇게 슬픈 노래는 내 몸에 고여서

흘러 나가지도 못하네 배수구 마개가 울고

그 아래 파이프들이 우네


나는 흘러가려고 태어난 몸

흘러가 당신 몸속의 물이 되려고 태어난 몸

지평선이 없어도 좋아 딛고 설 땅이 없어도 좋아

나는 오직 가기만 하면 돼

나는 당신 몸 깊은 곳에서 쉬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속삭이지도 않고

당신 눈동자 속의 물처럼 물끄러미 있으려고 태어난 몸


이 슬픈 노래는 어디서 흘러왔는가

내 썩는 몸 위로 왜 자꾸 오는가 어느 곳에 숨었다가

내 컵의 물을, 내 꽃병의 물을 울리는가

한강 둔치에 물 가득 차올라

도로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고

그 아래, 그 강바닥 깊은 아래

땅속 동굴을 흐르는 차가운 물소리


천장이 흔들리고 기둥이 젖어들고

솥들이 녹스네 두 눈을 크게 뜨고 앞가슴을 내밀고

숨을 참고 나가야지 썩지 않으려면 나프탈레이라도 먹어둬야 할까

열쇠를 찾아 이곳을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