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시

함박눈, 김이듬

fromk 2014. 8. 10. 06:57

눈이 와, 여긴 함박눈이야

네 목소리를 듣고

별안간 난

한 번도 함박눈을 맞아보지 못한 걸 알았어

평범한 기쁨을 떠나 있는 것 같아

엄청난 사태로부터도


늙은 시인에게서 사랑 없는 일생을 살았다는 말을 들을 때처럼 싱거운 얘기지


눈을 감고 눈을 상상해

폭설이 난무하는 언덕에 서 있어

두 팔을 벌려야 해

입을 쫙 벌린 채 눈덩이를 받아먹어

함박눈은 솜사탕만 할 거야

네게 한 번이라도 함박눈이 되었으면 좋겠어

눈발이 거세지고 조금씩 나는 파묻혀가고 있어

난 하얀 구릉이 되어 솜사탕처럼 녹아가네

눈은 죽은 비라고 루쉰이 그랬나?


네 얼굴에 내가 내리면

코가 찡하겠니?

나를 연신 핥으며 달콤해 아 달콤해 속삭일 거니?

나를 베개 하고 나를 안겠지

우린 잠시 젖은 후 흘러갈 거야

너무 싱거운 거 같아 망설인다면

삽으로 떠서 길가로 던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