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시 2015. 10. 31. 01:14

나들의 시, 너의 무덤가에서, 김선우

 om 5시

 (24시 편의점 같은, 편의를 위한 24시 너머, 혹은 그 안쪽으로 당신이 놓친 시간들을 찾아서, 오늘은 이렇게 씁니다)

 

 너의 손은 달처럼 변하네. 손금을 따라 밀물 드는 소리와 썰물 빠지는 소리가 나고. 파도를 뒤적인 손을 귀에 대어보네. 나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너는 바다처럼 남네.

 

 (생생하다는 게 그런 거라고 문득 생각합니다

 꽝꽝 언 동백 같은 시간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오래전 죽은 별의 흩어진 육신으로부터 맑은 침 한방울이 흘러내려……메마른 혀를 적시며 나의 아침이 온다. 잠에서 깨면 나들이 물 한잔을 마신다. 내 몸 끝에서 누가 깨는 소리……혹은 너의 몸 끝에서 내가 깨어난 느낌……어, 내가 왜 네 배꼽에서 태어나는 거지? 그렇게 아침이 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침을 닮은 시간이 왔다) [해]라고 부를 만한 별이 빛을 쏟고 [달]이라 부를 만한 별이 흰 얼굴로 안녕이라고 말한다. 점성술을 배운 회양목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양말을 신고. 간밤 새로 태어안 별과 죽은 별을 헤아려 축하와 애도의 편지를 쓰고.

 

 (짐작하시겠지만 죽은 별에게는 축하의 편지를, 탄생한 별에게는 애도의 편지를 쓰는 것이 내 오랜 휴머니즘입니다)

 

 그림자들을 모아다 불을 지피는 건 오래 지속해온 나의 소임. 그림자 땔감으로 만든 불은 냄새가 좋다. 냄새가 좋은 불로 나는 오늘의 밥을 짓고 너를 부른다. 나라는 먼지는 너라는 별을 구성하는 중요한 진실이다. 너라는 먼지는 나라는 별을 구성하는 중요한 진실이다. 세상은 빌려온 이름들로 가득해 너는 점점 야위어가고. 오늘에 어울리는 이름 하나를 주워들고 너는 불 옆으로 오고. 우리는 포옹한 채 그림자들을 불 속으로 던진다.(어제가 죽어서 오늘이 오고 오늘이 죽어서 내일이 오고) 너를 안고 있는 나는 기쁘다. 살아 있는 모든 날은 오늘이니. 오늘 기쁜 너와 내가 종알거린다.

 

 오늘은 어제 채집해둔 이름들을 반죽해 호박칼국수를 끓일까?

 아, 그런데……24시간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 아냐? 그래도……이리로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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