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시 2016. 12. 28. 23:27

상형문자 같은, 김행숙

 사람들은 목을 꺾어 인사하고, 팔을 꺾어 포옹하고, 불꽃을 쥔 손처럼 또 무엇을 꺾어서 사랑하는가.


 내 꿈을 꺾어서 너의 가슴에 안길까. 너는 내 대신 꿈을 꾸고, 나는 텅 빈 잠을 자는 동안,


 당신이 괴롭지 않다면 나는 무슨 의미가 있죠? ……칼자루를 쥐었는지……칼날을 쥐었는지…… 나는 혼동의 순간에 빛난다.


 그것은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가 남겨진 석판 같은 것이다. 무엇이 너와 닮았는가. 너와 닮은 것을 찾지 못할 때,


 무엇이 너와 닮지 않았는가. 너와 닮지 않은 것을 찾지 못할 때, 불꽃을 쥔 손으로 사라진 동물 같은 무엇을 모방하는가. 상상의 동물 같은 무엇을 꿈꾸는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잠시,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다음에 알아본 나는 누굴까. 그다음에 내가 알아본 너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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