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시
2015. 12. 4. 01:14
물빛이 저 세상의 얼굴처럼 느리게 환해질 때, 강정
푸르디푸른 물가가 거짓말처럼 투명하다
말하고 있는 내 입이 도통 민망해
몸속의 물들이 제각각 흩어지는 방향을 눈 밖에서 떠본다
하늘은 새 그림자를 문신처럼 박은 채
길게 입 다물고 있다
다시 다가오는 저녁은 푸름을 지나 이미 저 세상에 닿아 있다
나는 오래 가둬두었던 단어 하나를 꺼내어
물빛을 바꾸려고 한다
건너편 河岸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내들은
금시초문의 사투리로 물고기들을 쫓는다
물 이편으로 넘어오는 시간에 문득 금가루가 튄다
물 넘어가는 해가 먼지에 불과했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온몸이 물속에 잠겨 있는 순간이었다
내뱉는 거품 한 방울이 물 전체로 번진다
나는 비로소 물길 바깥으로
모래와 함께 쓸려나가는 詩의 맨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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