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시
2015. 12. 6. 01:14
밤 속에 누운 너에게, 허수경
가끔 너를 찾아 땅속으로 내려가기도 했단다
저 침침하고도 축축한 땅속에서 시간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러 있던
너를 찾으려 했지
땅속으로 내려갈수록
저 뿌리들 좀 봐, 땅에는 어쩌면 저렇게도 식물의 어머니들이
작은 신경줄처럼 설켜서 아리따운 보석들을 빨랫줄에 걸어두는데
저 얇은 시간의 막을 통과한 루비나 사파이어 같은 것들이
땅이 흘린 눈물을 받은 양 저렇게 빛나잖아
가끔 너를 찾아 땅속으로 내려가기도 했단다
사랑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세월 속으로 가고 싶어서
머리를 지하수에 집어넣고
유리처럼 선명한 두통을 다스리고 싶었지
네 눈에 눈물이 가득할 때
땅은 속으로 그 많은 지하수를 머금고 얼마나 울고 싶어하나
대양에는 저렇게 많은 물들이 지구의 허리를 보듬고 안고 있나
어쩌면 네가 밤 속에 누워 녹아갈 때
물 없는 사막은 너를 향해 서서히 걸어올지도 모르겠어
사막이 어쩌면 너에게 말할지도 몰라
사랑해, 네 눈물이 지하수를 타고 올 만큼 날 사랑해줘
'보관함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르귄트, 하재연 (0) | 2015.12.07 |
---|---|
물빛이 저 세상의 얼굴처럼 느리게 환해질 때, 강정 (0) | 2015.12.04 |
여름의 에테르, 박상수 (0) | 2015.12.01 |